도대체의 다락방 - (엽편) 콩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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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4 01:19
콩氏


나는 꼼짝없이 식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엊저녁 퇴근길에 사온 콩이-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집안이 좀 덥군."

얼어붙은 채로 노려보는 나에게,
콩은 의아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왜 그러나?"

기가 막혀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나저나 자네, 나를 먹겠지?"
"그러겠지."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이래서야 어디 먹을 마음이 나기냐 하겠냐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콩이 말을 건넨 순간부터, '먹느냐 안 먹느냐' 가 아니라
'죽이느냐 마느냐' 란 문제가 돼버린 것입니다.

"아쉽군."

콩은 입맛을 다셨습니다.

"하지만 살만큼 살았으니 미련은 없네."
"그러면 다냐?"

화가 치민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내 평생 콩이 말한다는 얘긴 들어본 적이 없어! 콩이 말하는 건 정상이 아니야.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서 멋대로 지껄이더니 미련이 없다고? 너는 그럴지 몰라도 난 아니라구. 이제 콩을 먹긴 다 틀린 거지. 비위가 상해서 먹을 수가 있겠어? 그뿐 아니야. 앞으론 뭘 먹든 그게 갑자기 말을 걸면 어쩌나 불안에 떨 거라구. 새우가 말하고, 고등어가 말하고, 무가 말하고, 사과가 말하면 어쩌지? '어르신, 제가 보기보다 아직 덜 익었는데요, 옆엣 놈을 먼저 드시면 안 될깝쇼?' 그러면 그걸 먹고 싶어지겠냔 말야. 찻잎이 말을 해도 볼 만 하겠군. 찻물을 붓는 순간 뜨겁다는 둥, 이러지 말라는 둥, 그냥 먹으면 안 되냐는 둥 떠들어 댈 테니까. 그런 밥맛 떨어지는 일이 또 있겠냔 말야. 너 같은 콩 따위야 팔자가 늘어져가지고 기껏해야 벌레 눈치나 볼 줄 알겠지만, 인간은 다르다고. 사는 게 얼마나 치사한 일인지 알아? 가뜩이나 눈치 봐야 할 일도 많은데 이제 음식들 눈치까지 보게 생겼으니 썅! 날 그 지경으로 몰아넣고 넌 그냥 편하게 가시겠다? 살만큼 살았으니까 미련은 없다고 말하면서?
이런 건방진 콩 자식!"

나는 길길이 뛰었습니다.
생각할수록 분하고 억울한 일이었습니다.
콩은 내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말했습니다.

"콩이 말하는 게 그렇게 드문 일인 줄은 몰랐네.
그런데 원, 그렇다면
그저 콩이 말하는 걸 본 적 있다고
친구들한테 수다나 떨면 그만 아닌가."

그러더니 콩은 아주 질려 버렸다는 듯,
영영 입을 굳게 다물어 버렸습니다.






2007/12/14 01:19 2007/12/14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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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즘 | 2007/12/14 03:3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새벽에 간혹 맥주를 마시다가........."내 몸속에 거품이 빠지기전에 마셔줘"
라는 환청을 듣곤 하는데..으음 병원에 가봐야할까요?
도대체 | 2007/12/14 09:55 | PERMALINK | EDIT/DEL
그럴 땐 맥주가 말하는 걸 본 적 있다고
친구들한테 수다나 떠시면 됩니........으허허

역시 휴머니즘님!
껄통령 | 2007/12/14 12:5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약은 약사에게 콩은 콩사에게...
도대체 | 2007/12/15 06:30 | PERMALINK | EDIT/DEL
곰은 우루사에게...
휴머니즘 | 2007/12/14 18:0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새벽 늦은 시각에 정말 그런 환청을 들은적이 있었답니다.
"내 의지완 상관없이 당신에게 선택된몸....내가 가장 화려할때 마셔줘~"라고
전 김빠진 맥주를 마시는건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연거푸 들이켰었죠.. 다음에 태어나면 천천히 음미할수 있는 녹차로 태어나라~!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이런 글이 주말새벽에 혼자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보면서 캔맥주 9개를 마신 변명이 될까요? 흑흑)
도대체 | 2007/12/15 06:31 | PERMALINK | EDIT/DEL
'가장 화려할 때 마셔줘' 쥑입니데이~
오군 | 2007/12/22 00:22 | PERMALINK | EDIT/DEL | REPLY
휴머니즘/ 불면증을 겪으면서 '나는 밤이 좋은 걸 보면 흡혈귀임이 분명해'라는 망상을 즐기는 저보단 정상인 것 같습니다 ㅋㅋ
금요일수원, | 2008/01/04 19:43 | PERMALINK | EDIT/DEL | REPLY
너무 훌륭한 글.
샤샥, 복사해서 가져가도 되겠지요?
출처는 꼭 밝히겠습니다.
도대체 | 2008/01/05 09:20 | PERMALINK | EDIT/DEL
아 쑥스럽다. 감사합니다 ;ㅅ;
아르하 | 2008/08/06 15:1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우리가 식인을 하지 않는 이유가 있군요.ㅎㅎ
도대체 | 2008/08/07 21:17 | PERMALINK | EDIT/DEL
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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