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


오늘 우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퇴마사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그를 부르던 '퇴마사'란 단어는
그에게 썩 어울리지 않는 명칭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해, 그는 못된 영혼을 퇴치하거나 물리쳤다기 보다
영혼을 달래고 위로하고 토닥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이라도 그가 영혼과 크게 싸웠다는 얘길 들어본 적 있습니까?
그는 영혼의 벗, 영혼의 안내자, 영혼의 은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영혼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론
오십년 간 쉬지않고 수많은 영혼을 쉬게 해주었습니다.
제아무리 사납고, 난폭하고, 고집 센 영혼이라 해도
그와 이야길 나눈 후엔 순한 양처럼 순순히 저승으로 향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영혼을 구함과 동시에,
그 영혼으로 인해 고통 받고 두려움에 떨던 산 자들까지 구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가 구한 자들은 우리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제껏 그 어떤 퇴마사도 그를 능가할 순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 영혼이 되어 저승으로 향했습니다.
이것이 아무리 인간으로선 벗어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 해도
여러분은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함과 동시에
이제 이 세계는 누가 어떻게 지켜줄 것인가, 라는 두려움을 느끼실 겁니다.

그러나, 자,
그는 세상을 뜨기 전에 유언을 남겼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영혼을 대하는 비결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길 바랐습니다.
아무 말 없이 세상을 떴다면 영원히 퇴마계의 독보적인 전설로 남을 수 있던 그가
굳이 그 비결을 널리 알리고자 했다니.
그가 이 세계를, 가여운 영혼들을, 산 자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럼 이제부터 그가 남긴 유언이자
영혼을 잘 달래는 법 두 가지를 공개하겠습니다.

첫째, 영혼이 하는 얘기를 잘 들어주어라.
당연한 얘기 같습니까. 그러나 많은 퇴마사들이 이점을 간과합니다.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뭐냐, 적어도 그만큼은 마음을 열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열기로 결정한 이들 중에 과연 진지하지 않은 이가 있겠냐는 겁니다.

언제였던가요. 그가 아프리카 오지 마을에서 원주민의 영혼과 마주쳤을 때였습니다.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그쪽 말은 통 말귀를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슨 얘긴지 해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영혼의 눈빛과 표정, 어조와 손발짓을 진지하게 대하더니
끝내는 영혼과 함께 펑펑 울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물며 말이 통하는 영혼이라면, 영혼의 얘기 중에서
아무리 황당하고, 우스꽝스럽고, 납득 안 되는 부분이 있다 해도
최선을 다해 끝까지 진심어린 자세로 들어주는 것.
이것이 영혼을 대하는 가장 기본이라고 그는 강조했습니다.

둘째, 그렇게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다면
이 말 한 마디를 건네십시오.
이 말 한 마디면, 대부분의 영혼이 안도하거나, 눈물을 글썽이거나,
겸연쩍어 하다가도 고맙다고 인사하거나, 미심쩍어 하다가도 고개를 끄덕이며 저승으로 향할 것입니다.
그는 이 한 마디로 수많은 영혼과 산 자들을 위로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이 문장을 세계 각국의 언어로 외우고 있었으며
말년엔 소수민족의 언어로도 일일이 기록해 지니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나라에 가더라도 영혼을 인도하는 것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 한 마디란 바로 이것입니다.


"자네 잘못이 아닐세."







2008/01/03 10:05 2008/01/0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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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제문서 2008/01/04 07:1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침부터 눈물이 나네요..ㅜ

  2. 금요일수원, 2008/01/04 19:0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잘 들어주고 마지막... 니 잘못이 아니다.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잘 지내시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도대체 2008/01/05 09:10  address  modify / delete

      안녕하세요. 저는 그냥저냥 지내고 있습니다 흐흐.
      수원님도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한 한 해 보내셔요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