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수가 아프다. 엊저녁부터 아무것도 안 먹고(음식도 물도 보여주면 피했다) 토하다가
오늘 아침부터 토하는 게 심해졌다. 오전에 병원에서 처방을 받았는데, 오고 가는 길엔 그래도 꽤 명랑했다.
그런데 귀가해서 더 심해졌다. 먹은 게 없으니 노란 위액만 토하다가 나중엔 달걀처럼 끈끈한 덩어리를
쉬지 않고 토하는 지경이 되었다.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서 병원에 전화하고 다시 데려가니
24시간 진료하는 큰 병원으로 갈 것을 권유해, 멀리 떨어진 병원으로 달려가 검진 받고 입원시키고 왔다.
요즘 먹는 양이 줄고 사료를 피하기에 성장기 과정인 줄 알았다. 강아지가 좀 크면 그런다고들 해서.
한창 이갈이 중이라 그런가 생각하기도 했는데 아팠던 모양이다.
병원에선 플라스틱이나 금속 같은 이물질을 삼킨 것 같다고 했지만 막상 엑스레이에 찍힌 것은 없다.
원인이 불명해 더 걱정이라, 밤사이 계속 지켜보며 진료하는 게 좋겠다는 권유에 따라 입원을 시켰다.

태수가 반기지 않는 빈집에 들어서니 너무 허전하다.
마루엔 낮에 태수의 토사물이 묻은 방석과 수건들이 뒹굴고 있다.
태수는 내 옆에 누워 있다가도 토할 때마다 보지 말라는 듯 마루로 달려나갔다.
요사이 부쩍 태수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나에게 태수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아침마다 나를 깨워 규칙적인 생활이 가능하게 했고
매일 함께 산책하며 햇볕을 쬐고, 달리다 보면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단 몇 시간 외출했다 돌아와도 백년만에 만난 것처럼 반겨줬고, 그래서 집에 오는 게 즐거웠고
마루에서 혼자 인형 갖고 놀다가도 태수야, 부르면 한걸음에 달려와 와락 안겼다.
그렇게 사랑을 주고 받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며칠 전엔 태수가 나에게 준 이 긍정적인 변화들을 생각하다가
이 작은 녀석이... 하며 왈칵 눈물이 나기도 했다.
방금 입원시키고 돌아와 이렇게 주절거리는 게 호들갑일까. 그런데 난 지금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내 옆에 꼭 붙어 자야 안심하는 새끼가 영문도 모르고 떨어져 병원에 있는 게 걱정도 되고.
막상 집에 오니 입원시킨 게 정말 잘 한 건지 집에서 돌봐야 했던 건 아닌지 오만 생각이 들어서
불안한 마음을 달래보고도 싶은 것이다.
아, 이물질 안 뵈는 게 별일이 아니라 그냥 그런 거라서 쉬이 나으면 좋겠다.
밤사이 안정을 취하며 보살핌 받고 나면... 내일은 기운내서 나에게 달려들면 좋겠다. 왜 이제 데리러 왔냐고 평소처럼 호들갑 떨며 깡깡 짖어야지.
어여 나아라 우리 태수. 태수 이쁜아.




-다른 얘기:
어제 올린 선거 관련 글은 지웠어요.
개표 결과를 보며 화가 나고, 이십대 투표율이 현저히 낮은 걸 보고 이러쿵저러쿵 썼는데
투표 안 한 이십대보다, 그동안 그래서 투표 말곤 딱히 한 게 없는 삼십대인 제가 더 나빠요.
다음 선거엔 같이 잘 투표하고
그리고 또 함께 다른 일들을 찾아보죠.



2008/04/10 20:07 2008/04/1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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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aystall 2008/04/10 20:2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태수가 얼른 낫길 바랄께요. 그리고..
    '투표 안 한 이십대보다, 그동안 그래서 투표 말곤 딱히 한 게 없는 삼십대인 제가 더 나빠요.'
    이 말, 참 맘에 깊이 닿네요.

  2. 앨리스 2008/04/11 09:0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걱정되서 들어와봤어. 큰일이네..글구 이갈이 할쯤의 성장기에는 없어서 못먹지 사료 피하고 그런 경우는 잘 없어. 정말 막 자라는 남자 중고생들처럼 먹어치우거든. 태수는 뭐가 속이 불편하고 아프니까 못먹는게지..
    난 자꾸 걱정이 된다. 태수를 충무로에서 데려온게 계속 마음에 걸려. 어쨌든 마음 단단히 먹고 태수의 완쾌를 기다리자. 같이 병원에 가고싶네..휴

    • 도대체 2008/04/12 10:16  address  modify / delete

      바쁜와중에 전화해줘서 고마워. 그땐 진짜 불안했거든. 도움이 많이 되었어! ㅡㅜ
      다행히 엊저녁 퇴원했는데 귀가해서 또 토하고 뻗어서 밤새 애가 좀 탔다; (지금은 또 기운 차린 듯?)
      까미처럼 튼튼하게 쑥쑥 자라야 하는데 요놈.

  3. aspacia 2008/04/11 17:0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강아지 아픈 거, 정말 속상해요.
    예전 우리 강아지 초코가 입원까지 했었는데 눈물이 다 나더라구요.
    근데 어릴 때 한 번 크게 앓아야 건강해요.
    지금 우리 초코는 자손을 퍼뜨리며 시골에서 잘 살고 있답니다.
    걱정마세요.
    꼭 나을 거에요.

    • 도대체 2008/04/12 10:21  address  modify / delete

      aspacia님도 경험하셨군요.
      그러게요. 사람이 아니라 지가 어디가 아픈지 설명도 못하고...
      아주 쪼끄만 놈이 저를 들었나 놨다 하고 있어요. -_-
      초코가 자손을 퍼뜨리며 잘 살고 있단 얘기에 웃었어요. 태수도 장가보낼 날이 오겠죠? ^^; 고맙습니다.

  4. 휴머니즘 2008/04/12 01:1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흐음..아마도 성장통이겠지요.
    태수 사진을 보니 안광에서 뿜어져 나오는 포스가 도대체님 애3명 낳을때까지 왈왈 거리겠던데효.
    레리삐~

    • 도대체 2008/04/12 10:23  address  modify / delete

      워매~ 제가 애 셋 낳을 때까지 살 수 있다면
      태수는 어쩜 불사견이 될 수 있어요.ㅋㅋ 고맙습니다.

  5. 이수연 2008/04/13 10:1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강아지는 먹고 싶어하고 마시고 싶어하면 나은 거니까 뭘 억지로 먹이려 하지 마시구요..
    북어포를 물에 불려서 한참 두어 염분을 뺀 다음 끓여 나온 국물을 먹여 보세요.
    잘 먹는다면 포도 일단 두어 보시고....
    북어가 강아지들에게 참 좋아요.
    태수의 완쾌을 간절히 빌어요^^

    • 도대체 2008/04/14 02:41  address  modify / delete

      말씀대로 회복이 좀 되니까 음식을 입에 대는군요.
      많이 나아져서 이제 죽 먹고 있답니다. 북어국도 어제 잘 받아먹었구요. 감사합니다 :)

  6. 홍익인간 2008/04/14 01:0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선거관련 쓰신글 못봤는데 보고싶네요...
    태수도 아자아자!

  7. vk 2008/04/15 00:4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예전 외신에서 모나라당에서 강아지가 나와도 당선된다란 기사가
    사실로 드러난 지금 이번 선거의 파란이 태수까지 아프게 했군요;;;
    이 나라에선 강아지도 편히 지내게 놔두질 않는군요라면 너무 비약일까요;;;

    • 도대체 2008/04/15 23:32  address  modify / delete

      선거 결과에 많이 속상하셨군요;
      스누피라면 모를까 저희 태수는 그냥 개생끼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