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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3 01:02 2008/05/13 01:02

어떤. 자격
[수다 잡담/적당한 잡담 | 2008/05/13 01:02]

누굴 열렬히 좋아하지도, 증오하지도 않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
평화로울 것이다. 그리고 그 편이 폼도 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나이가 들면 너그러워진다는데 나는 여전히
누가 싫고, 누가 싫고, 누가 싫다.
그냥 진절머리나게 싫은 게 아니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겨나갈 것 같다. 그래서, 증오다.

오래 전에 나는 내 슬픔을
인정 받을 수 없었다.
어떤 슬픔은 수치스러웠고
어떤 슬픔은 도덕적이지 못했다.
나는 내가 슬픈 이유를 드러내지 못하고
방안에서 천장 벽지 무늬를 헤아리며
기어나오려는 슬픔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어딜 감히'.
슬픔에도 자격이 있는데 내겐 그게 없는 것 같았다.

자, 이젠 증오다. 어떤 일이 일어났고
나는 증오할 자격이 있었다.
아무도 내게 증오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사람들은 함께 증오해주기도 했다.
나는 열심히 증오하고 마음놓고 증오했다.
증오하고
증오하고
증오하고
증오하면서
시간이 흘렀다.
나는 여전히 증오하고 있고
사람들은 '아직도?'. 흠칫 놀라거나
잊으라며 점잖게 타이르거나 한다.

증오에 대한 자격은 시한부였다.
육개월 쯤 증오하면 되는 일
일년 반은 증오해도 되는 일
십년이나 증오하는 건 아무래도 찌질한 일
처럼.
아련한 슬픔은 있어도 아련한 증오는 없다.
기한을 한참 넘긴 증오를 하는 것으로 우스워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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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방문자 2008/05/13 07:17 댓글| | 수정,삭제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도대체 2008/05/15 01:24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이런 말을 해주는 분이 있다니 저는 운좋은 사람인가봐요. ^^
앨리스 2008/05/13 09:43 댓글| | 수정,삭제
복수는 나의 힘이고 증오는 건강에 이롭지. 라고 난 생각하지.
불과 어제 밤에도 주차문제로 골목길에서 언성을 높인 나는 항상 전의를 불사르고 잠자리에 든 밤에는 결국 벽에 부딪히지 않는 물고기가 되어 물처럼 흐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말야. 해가 뜨면 다시금 손톱을 세우고 누가 날 건드리면 다 뜯어버리겠다 이빨을 보이며 으르렁 거리게 되는걸;
도대체 2008/05/15 01:25 수정,삭제
나의 싸부가 되어 줘!
vk 2008/05/13 12:25 댓글| | 수정,삭제
증오, 슬픔, 기쁨이란 것들도 권태, 나태엔 힘을 못쓰는것 같아요
태자가 들어가서 그런가;;;

사랑도 그럴까요?
도대체 2008/05/15 01:27 수정,삭제
김근태, 왕경태 등의 농담을 하려다가 참았습니다.;;
사랑은 모르겠지만 연애는 나름대로 부지런해야 지속되는 것 같아요?
오리아재 2008/05/14 01:04 댓글| | 수정,삭제
첫 문장에 놀랬습니다.

제가 그런데, 어지간해서 화를 안내고, 누구를 미워하지도 않는 성격이라서
열렬히 사랑하지도 못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성격으로 인한 제 삶은 나른하고 평화롭기는 한데, 별 재미 없습니다 ㅋ
전 격정적인 성격이고픈데, 원한다고(노력한다고) 될 일은 아닌가 봅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애정?)은 있어서 나름 진지하게 관찰하고 얘기들도 듣고, 이런 저런 책을 읽기도 하는데
저의 이런 성격은 (성격이 후천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면) 유년시절의 영향이 큰 듯 합니다.
존경할만한 부모님을 둔 덕분에 유년시절의 모든 기억이 평화롭거든요.
형제들끼리 한번도 싸우지 않고 자랐다는... ㅎ

(제가 부러워하는) 감성이 풍부한 분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유년시절 애증어린 기억을 말씀하시는 경우가 꽤 있더군요.
(단정지을 만큼 충분한 사례를 경험한 것은 아닙니다 ㅋ)

누굴 열렬히 좋아하기도, 증오하기도 하는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
제 소원이었습니다. (뭐 이젠 꽤 늙어버려서요 ㅎ)
도대체 2008/05/15 01:33 수정,삭제
축복받은 유년기를 보내셨군요. 부럽습니다.
읽으면서 '아 이런 사람이 정말 있구나'란 생각마저 들었어요...!
제가 아이를 낳게 될진 모르겠지만, 만약 아이가 생긴다면
저도 그렇게 평화로운 유년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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