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24 23:31
서지가 원더풀 라이프 전시 보러 온다기에 약속 잡고 만나서 갤러리를 돌아보던 중이었다.
서지에게 사진을 부탁하고 평소처럼 가면을 썼다.
마침 관람객이 별로 없었다. 갤러리 저쪽- 우리가 안 보이는 쪽에 아가씨 한 명이 있었을 뿐이라서
마음 편히 내 그림 앞에서 온갖 폼을 잡고 사진을 몇 컷 찍었다.
그러고나니 사진 찍어줄 사람이 있을 때 좀더 찍고 싶은겨.
저쪽에 있는, 내가 좋아하는 다른 분 작품 앞에서도 찍고 싶은겨.
그래서 가면을 쓴 채로 걸음을 척척 옮기고 있는데 갑자기 내 몸이 앞으로 엎어지고 있었다.
어 이게 아닌데? 왜 넘어지고 있지? 아 맞다, 여기에 낮은 탁자가 디스플레이 돼 있었지, 그걸 못 보고 걸려서 넘어지는 거구나...
찰나에 온갖 생각이 스쳐갔는데,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드니
엎어져 있는 나. 비명 소리에 달려온 큐레이터. 그리고 바닥에 뒹굴고 있는 자...작품들......
순간 내가 다친 것 보다 혹시 저 작품들이 깨진 거 아닌가 눈이 돌아가서 벌떡 일어났다.
다행히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어서 작품들은 멀쩡했는데, 와 나 정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최소 몇 십만원은 할 거 아냐. 어쩌면 그 이상일텐데 그걸 아작낼 뻔 한 거 아녀.
정신이 없어서 "죄송합니다"를 외치며 자리를 얼른 떴고
서지는 내가 넘어지는 순간의 추한 모습을 자기 말고 본 사람이 없으니 안심하라고; 다독였다;
그런데 두둥, 갤러리를 나와 치마를 걷어올리니 상처가...
탁자에 모서리가 많기도 했지만 난 또 거기에 인체공학적으로 입체적으로다가 골고루 잘도 부딪혔나봐.
양쪽 정강이에 혹이 두 개씩. 그 중 벗겨진 건 세 곳.
치마를 더 걷어올리니 허벅지 안쪽에(도대체 거긴 어떻게 다칠 수 있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살이 길게 찢어져 있었다.
결국 양 다리에 피멍과 상처를 동반한 혹 다섯 개를 확인하고, 갤러리 근처 약국에서 붕대랑 소독약, 연고를 사와서 아트센터 휴게공간에서 응급처치를 했다.
그쪽에도 사람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었다만. 누가 걸어오다가도 치마 걷고 허벅지에 붕대 감고 있는 걸 보고 흠칫해서 돌아갔으려나;;
응급처치를 하고 한숨을 돌리게 되자, 긍정적인 서지는 오늘도 "액땜이라 생각해." 라며 위로했고
나는 "이런 건 땜이 아니라 액이라니깐." 하고 투덜거렸다.
집에 돌아와 붕대를 갈고 있는데 영문 모르는 태수는 붕대가 신기한지 자꾸 코를 들이밀고 난리;
찢어진 허벅지 아파 죽겠는데 거기로 뛰어오르고 난리;
넘어지면서 충격이 갔는지 가슴께도 아파서 숨쉬는 게 거슬리고 있;;
사실 난 원래 잘 넘어지긴 해서 며칠 전에도 크게 한 번 넘어졌고, 그래서 대체씨는 왜 그렇게 자주 넘어지냐는 얘길 듣긴 했지만 그땐 걍 엉덩방아 수준이라 허허 웃고 넘어갔는데
오늘 크게 다치고 나니 앞으로 정말 조심해야지 싶다. 일단은 얼굴 안 다친 게 천만다행이고.
무엇보다 이러다가 비명횡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오늘 처음으로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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