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한남동에 살던 나는 인근의 이태원을 오가는 시간 역시 많았다. 오가는 외국인과 저녁이면 미용실에서 화장을 하던 남자들과 옆집에 살던 양공주 아줌마와 휴일에 고무줄 놀이를 하던 이슬람 사원을.... 나는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중1 여름에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왔지만 전학을 하지 않았기에, 수업이 일찍 끝나는 토요일이면 학교에서 출발해 한남동과 이태원을 거치는 버스 코스를 그냥 걸어 집으로 오곤 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쏟아지는 햇살 때문에 이태원의 모든 것은 반짝거렸다. 무성한 가로수잎과 오래된 상점 간판과 노점상의 물건들과 사람들의 머리까지..... 그 풍경이 너무 좋았던 나는 마침내 이태원을 벗어나 국방부 앞을 지날 때면 들뜬 감정이 최고조에 달해 노래를 흥얼거렸다.
사는 것에 지치고 힘들 때면, 그래서 나는 이태원을 떠올린다. 한없이 반짝이기만 하던 내 열네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곳을 걷는 나는 언제나 둥둥 떠다니는 듯 하다.
오늘, 퇴근 후에 문득 생각이 나서 집에 오는 길에 그곳에 들렀다. 전철역을 나오는데 밖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눈을 털고 있었다. '눈이 오나?' 지상으로 올라가자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다. 전철을 타기 전까지도 눈이 오지 않았는데, 그래서 함께 퇴근하던 언니에게 "눈이라도 오면 좋겠어요" 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이미 바닥에 쌓일 정도로 눈이 내려 있었다. 마치 누가 요술이라도 부린 듯한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나는 넋을 잃었다. 그리고 눈으로 뒤덮인 이태원을 걸어다니며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아아 이태원 이태원, 나는 이곳에 올 때마다 구원받는 기분이다.
그렇게 걸어다니다가 어느 바에 들어갔고, 손님이라곤 나밖에 없지만 전화벨은 계속 울리며 몇 년 전의 최신 팝송이 계속 흘러 나오는 그곳에서 맥주를 마셨다. 두 병을 서둘러 비우고 밖으로 나와 다시 또 눈을 맞으며 걷다가 중얼거렸다. 제발 날 구원해달라고.
한동안 붕 떠 있기만 하던 나는 이윽고 24시간 영업한다는 중국집을 발견했고 저녁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곤 그 집에 들어가며 짬뽕을 달라고 외쳤다. 평소와 달리 그릇을 들어 국물까지 열심히 마셔대며 생각했다. 어느 토요일 햇빛이 많은 날, 다시 이태원에 와야겠다고.....






